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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원사는 정신없고 재택사는 멀고 먼 길

  • 이규림, 나정현
  • 2023년 12월 12일
  • 1분 분량

최종 수정일: 2023년 12월 17일

글/그래픽 이규림 실습기자 gyu2129@snu.ac.kr

글/영상 나정현 실습기자 njhfilm@snu.ac.kr

작별인사 3분 만에, 임종 후엔 곧바로 냉동고 行··· 숨가쁜 병원 안 임종 전후


“사망선고 하자마자 아버지를

안치실로 빼앗듯이 끌고 갔지.”

 

일반 병동 다인실에서 부친과 사별한 양모 씨 이야기다. 고인은 입원 중 갑자기 상태가 나빠져 세상을 떴다. 가족들은 주위에 누가 들을까 울음을 삼켰다.

최은영 씨의 시부는 응급실 안 중환자실에서 숨을 거뒀다. 임종 직전까지 수많은 의료 장비가 그의 몸을 감싸고 있었고 병실은 기계가 내뿜는 빛과 소음으로 가득했다. 마지막 심폐소생술을 한 뒤 사망선고까지 가족에게 주어진 시간은 3분. 최 씨는 이제 편히 쉬시라는 말만 겨우 전했다.

 

“빨리 결정해 주세요.”

 

2015년 3월 아버지가 병원에서 사망하고 나윤호 씨가 가장 먼저 들었던 말이다. 그는 병원이 “죽음을 가장 효율적인 시스템으로 처리하는 곳”이라고 했다. 병원 직원이 사망진단서를 몇 장 준비할지, 병원 장례식장을 이용할지부터 장례식장의 크기, 꽃장식 규모, 수의와 관의 크기, 조문객에게 대접할 음식의 종류 등을 물어왔다. 다음으로 상조 직원이 다가왔다. 상복, 조문 시간, 음식을 담을 그릇의 종류, 음료수 종류, 장지를 정하라 했다. 임종에서 발인까지 병원은 기계처럼 정해진 순서에 맞게 죽음을 “처리”했다. 숨 가쁜 과정에 애도할 틈은 없었다.

 

대부분 환자는 다인실에서 숨을 거둔다. 중환자실, 응급실, 심지어는 처치실에서 급성기 치료를 받다 갑자기 사망하는 환자도 많다. 드물지만 가족 곁에서 조용하고 천천히 임종에 이르는 이들도 있다. 임종실 환자들이다.

 

서울대학교병원에는 임종을 앞둔 환자가 가는 병실이 있다. 124병동 19호실 임종실이다. 다른 1인실과 크기와 구조는 같지만 이곳은 삶보다 죽음을 위한 공간이다. 병자는 잘살기 위해서가 아니라 죽음에 잘 이르기 위해 임종실에 온다. 방에 들어서자마자 한쪽 벽을 꽉 채운 창 너머로 종로구 일대가 한눈에 들어온다. 통창으로 햇살이 가득 들어와 조명을 켜지 않아도 환하다. 자연광을 받은 베이지색 벽지가 병실에 따스함을 더한다. 창문 앞 선반에는 라디오와 책이 있다. 환자들은 라디오로 생애 마지막 순간 가장 좋아했던 음악을 듣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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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학교병원 임종실에서 보이는 창밖 풍경

 2019년 11월 양 모 씨는 말기 췌장암으로 투병하던 시부를 대구가톨릭대학교병원 임종실에서 떠나보냈다. 고인이 임종실에서 보낸 생애 마지막 이틀 동안 친척들이 병실을 찾아 애도했다. 목 놓아 우는 사람도 있었지만 병실 벽에 방음 처리가 돼 있어 곡소리가 새어 나갈 걱정은 없었다. 이별의 순간 가족들은 고인의 손을 잡고 감사한다, 사랑한다는 인사를 건넸다. 양모 씨는 “임종실은 보호자가 병원 안에서 선택할 수 있는 최선의 임종 장소였다”라고 했다. 환자에게 임종실은 “집과 그나마 비슷한 병실”이다. 몸을 죄는 링거 줄, 독한 약, 종일 쏟아지는 조명에서 벗어나 가족 곁에서 마지막을 맞는다. 서울대학교병원 완화의료임상윤리센터 유신혜 교수는 “임종실에 온 사람들은 퉁퉁 부은 몸이 가라앉고 표정이 편안해 보인다”라고 했다.

임종실에는 자리가 없고 다른 병실에서는 죽음을 준비할 여유가 없다. 병원을 나와 환자의 집으로 향했다. 가정에서 좋은 임종을 이룰 수 있을까.

갈 길 먼 가정형 호스피스 • 재택 의료

까다로운 절차에 높디 높은 자택 임종 장벽 

가정형 호스피스 치료를 받는 환자는 대체로 가정에서 사망한다. 치료를 시작할 때 환자나 보호자는 의료진으로부터 가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응급상황, 임종 징후, 사후 대처법을 안내받는다. 임종이 가까워져 오면 가족은 환자의 손을 잡고 평안히 잠들기를 기도한다. 찬송가를 부르거나 불경을 외는 등 종교의식을 치르기도 한다. 고인이 눈을 감은 후 보호자는 시신에 깨끗한 옷을 입혀 장례식장으로 향한다. 새오름 가정의원 간호사 A씨는 “집에서 가족의 마지막을 함께한 보호자들은 대부분 고인을 잘 보내 드려 다행이라 말한다”라고 했다.

 

하지만 한국에서 가정형 호스피스를 이용하기는 쉽지 않다. 전국에서 38개 의료기관만이 가정형 호스피스 치료를 시행하고 있다. 2022년 호스피스 신규 이용자 2만여 명 중 32.4%가 가정 돌봄을 원했지만 실제로 서비스를 받은 사람은 절반도 되지 않았다. 병원이 가정형 호스피스 치료에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는 것은 수익을 내기 어렵기 때문이다. 가정형 호스피스 의사가 하루에 방문하는 가정은 일반 가정의학과 의사가 진료하는 환자 수의 10%다. 지금의 의료 수가로는 이 차이를 메꾸기 어렵다. 환자와 보호자에게 정보가 부족한 것도 원인이다. 중앙보훈병원의 한 간호사는 “가정형 호스피스 치료가 있다는 것도 모르는 호스피스 대상 환자들이 종종 있다”라며 “서비스를 적극적으로 홍보해야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그러나 임종실을 사용할 기회는 소수에게만 주어진다. 서울대학교병원에 임종실은 하나, 2019년 기준으로 전국에 임종실은 178개다. 매년 2만 명씩 늘어나는 호스피스대상환자를 감당하기에 턱없이 부족한 수다. 지난 10월 6일, 종합병원과 요양병원도 임종실을 갖춰야 한다는 의료법 개정안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하지만 일부 의료계에서는 임종실 설치를 강제하면 경영이 어려워지고 의료 효율이 떨어진다고 우려한다. 기존 1인실에 비해 병원에 지원되는 수가가 적기 때문이다. 임종실을 늘리는 만큼 다른 병상이 줄어든다는 점도 문제다. 김완배 대한전문병원협회 상근부회장은 “언제 환자가 들어오고 나갈지 모르는 임종실을 비워 두는 동안 수많은 환자가 중환자실 입원을 기다린다”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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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정형 호스피스란?

 

가정형 호스피스는 말기 환자나 그 가족이 가정에서 지내기를 원할 경우 보건복지부로부터 지정받은 전문기관의 호스피스 팀이 자택에 방문해 돌봄과 완화의료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이다. 암, 후천성 면역 결핍증 등 보건복지부가 지정한 특정 질환의 말기 환자가 그 대상이다. 의사, 간호사, 사회복지사 등이 주 1회 이상 정기적으로 환자 집에 방문해 통증 완화치료, 상담, 보호자 교육을 하고 임종 과정까지 돕는다.

 

※자료=중앙호스피스센터

“생애 마지막을 어디서 맞고 싶으세요?”

“집이지.”

“근데 누가 날 돌보겠어.”

 

2023년 10월, 관악구 서광경로당에서 만난 다섯 명 할머니는 모두 집에서 임종하기를 원했다. 하지만 80세 A씨는 “어느 자식이 간병하겠냐“라며 “실버타운이나 요양병원에 갈 생각”이라고 했다.

가정형 호스피스가 아닌 재택의료 서비스는 아직 걸음마 단계다. 보건복지부에서는 지난해 12월부터 장기요양 재택의료 시범사업을 시작했다. 의사와 간호사가 움직임이 불편한 어르신 가정을 방문해 의료 서비스를 제공하는 사업이다. 올해 1월까지 28개 의료기관을 통해 450명이 재택의료 서비스를 받았다. 2022년 고령자가구 가운데 노인끼리만 사는 가구는 3500 가구, 독거노인은 2000가구다. 돌봐 줄 사람이 없는 노인은 어쩔 수 없이 병원으로 향한다.

 

집에서 죽었을 때 사후 처리가 복잡하다는 것 역시 재택 임종의 문턱을 높인다. 자택 임종 후 보호자는 경찰에 신고해 고인이 자살이나 타살이 아닌 질병사했음을 보여야 한다. 경찰이 부른 의사에게 검안을 진행해 사인에 대한 시체검안서를 발급받고, 신고자나 보호자는 다른 사건이나 범죄가 연루되지 않았음을 증명하는 검시 필증을 받아야 한다. 조금이라도 의심되는 정황이 보이면 시체를 부검한 후 이상이 없다는 의사의 판단이 내려진 후에야 장례식장으로 시신을 옮길 수 있다. 그 후 시체검안서 7부와 검시 필증 5부를 준비해 장례식장, 동사무소, 기타금융기관 등에 제출하여 사망신고를 해야 한다. 절차가 복잡하기 때문에 재택 임종은 유족에게 부담으로 다가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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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익숙한 내 집에서 적당히 낡은 이불을 덮고,

가까운 사람들과 마지막 인사 하고 싶어요”

 

삶의 마지막 순간을 그려본 적이 있냐는 질문에 장명희(52세) 씨는 ‘집에서 편안하게’라고 답했다. 평소 좋아했던 이문세의 노래를 나지막이 틀어 놓고, 가족에게 슬프지도 무겁지도 않은 작별의 인사를 나누고 싶다고 했다.

이제는 죽음을 현실로 마주할 때··· 재택 임종을 위한 가이드

한국의철학회 김준혁 편집이사는 집에서 좋은 임종을 맞기 위해서는 “죽음을 향한 두려움을 버리고 죽음에 현실적으로 다가가야 한다”라고 말한다. 재택사라 하면 사람들은 가족에 둘러싸여 숨지기 직전 못다 한 말을 나누는 영화 속 한 장면을 떠올린다. 실현하기 어려운 바람임을 알지만 죽음을 깊이 들여다보기는 두렵기 때문에 더 이상 생각하지 않는다. 그는 "가족, 지인과 툭 터놓고 얘기하면서 임종과 장례에 대해 구체적인 그림을 그려봐야 한다”라고 조언한다. 예컨대 가족과 멀리 떨어져 지내 임종 순간 자택에 모이기 어려울 것 같다면 동년배 노인과 함께 말년을 보내다 세상을 떠나기를 계획할 수 있다. 건강할 때 주위 사람들에게 미리 진심을 전하고 삶을 정리한 뒤 집에서 조용히 숨지는 것을 ‘현실적으로 좋은 죽음’이라 받아들일 수도 있다.

 

좋은 임종을 위해서는 상당한 준비가 필요하다. 가장 먼저 해야 할 것은 죽음을 마주 보는 일이다. 그러나 사람들은 죽음을 나쁘고 두려운 것으로 여기며 죽음에 대해 생각하기를 꺼린다.

 

경로당 노인에게 ‘죽음'에 대해 질문하는 것은 매우 부담스러웠다. 기자는 욕을 먹고 쫓겨날 각오를 하며 단어 하나하나에 주의하며 조심스럽게 인터뷰를 이어갔다. ‘죽음', ‘임종'이라는 단어를 사용하지 않으려 노력했고, ‘생의 마지막', ‘마지막 순간'이라는 은유적인 표현으로 죽음을 설명했다. 우리 사회에서는 죽음을 죽음이라 부르지 못한다. 죽음을 논하는 일은 금기가 돼왔다. 하지만 이렇게 죽음에 대한 언급을 피하고 생각하지 않으려 하다 보면 결국 준비되지 않은 죽음을 맞이할 수밖에 없다. 자기 죽음에 대해 고민하고 주변인과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 무겁고 불편한 경험이 아닌 당연한 일상이 되도록 죽음의 공론화가 필요하다. 집에서 좋은 죽음을 맞는 사회로 향하는 길, 제도나 개인이나 현실을 마주하는 데에 실마리가 있다.

 

사람들은 집에서 죽고 싶어 하지만 정작 그 구체적인 방법을 알지는 못한다. 현시대에 재택 임종을 경험했거나 정보를 아는 사람은 드물다. 재택 임종을 위해서는 죽기 전 자신 상태는 어떨지, 병원에 가지 않을 선택지가 있을지, 가지 않는다면 집에서 어떻게 증상이나 통증을 관리할지, 장례 절차는 어떠할지 등을 미리 생각해 봐야 한다. 한국의 웰다잉 교육에서 사용하는 웰다잉 십계명과 가정형 호스피스를 이용하며 재택 임종을 준비할 때 가장 핵심적인 과정 다섯 가지를 소개한다.

집에서 죽음 준비하기 5계명

 

1. 가족, 주변 사람에게 이야기하기 

집에서의 임종은 혼자 준비하기 매우 어렵다. 재택에서 임종하고 싶은 마음을 주변 사람에게 공유하고, 그들과 구체적으로 재택 임종을 계획하자. 2. 임종까지 돌봐 줄 인원 확보 

임종을 앞둔 사람에게는 보통 두 사람의 지원이 필요하다. 보호자는 환자에게 어떤 보살핌이 필요한지 알고 있어야 한다.

 

3. 사전연명의료의향서 

임종이 다가오면 병원에서 연명의료를 중단하고 집으로 퇴원할 수 있도록 미리 사전연명의료의향서를 작성하는 것이 좋다.

 

4. 죽음의 과정 알기

죽음이 다가오면 호흡이 바뀌고 음식을 잘 삼키지 못하며 피부가 파랗게 질리고 입을 다물지 못하는 등의 증상이 나타난다. 이러한 변화는 ‘해결해야 할 문제’가 아니라 ‘죽음의 과정’임을 알아야 한다.

 

5. 상조회사 가입 및 장례 계획 세우기 

미리 상조회사에 가입하거나 장례식장을 정해 놓으면, 임종 후 사망진단서를 손쉽게 발급받고 비교적 수월하게 시신을 운구할 수 있다. 경찰 수사나 서류 제출 등의 복잡한 행정 과정을 생략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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