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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버 플렉스’는 없다

  • 김지수, 심민섭
  • 2023년 12월 12일
  • 5분 분량

최종 수정일: 2023년 12월 16일

돈 있어도 지갑 안 여는 고령층부유한 노년층, 하지만 지갑은 닫혀있는 ‘실버세대’


글 김지수 실습기자 snusu1@snu.ac.kr / 그림 심민섭 실습기자 mikeshim078@snu.ac.kr


‘욜드’, ‘액티브 시니어’, ‘뉴시니어’. 금전적으로 풍족하고 활발히 여가를 즐기는 새로운 노인 세대를 뜻하는 말이다. 한국 경제성장 황금기를 이끈 베이비부머 세대가 노년층에 진입하면서 시장에 등장했다. 이들은 기존 고령층보다 높은 학력, 높은 개방성, 개인주의적 성향 등 이전 세대와 다르다는 점에서 고령층이 문화와 여가 등 각종 소비에 지갑을 여는 ‘실버 플렉스’ 시대를 열 것이라는 기대를 모았다.

 그러나 현재 그들의 지갑이 열릴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롯데백화점이 서울 소공동 본점에 오픈한 실버 기프트 편집숍은 실적 부진으로 폐점했다. 현대백화점은 2019년 에이지리스 편집숍 팝업 코너스를 개장하고 확장 계획을 세웠지만 2023년 현재 이어지지 않는다. 작년 이마트는 시니어 케어 전문 매장을 시범적으로 운영한 후 확장할 계획이었으나, 곧 종료했다. 기업들은 ‘뉴시니어’를 노리고 단기 팝업ㆍ광고로 시장 진입을 시도하곤 했지만, 살짝 발을 담구고 이내 곧바로 빼버리는 양상이 몇차례 반복됐다.


 물론 돈 많은 시니어는 현실이다. 서울연구원에 의하면 2021년 기준 60세 이상이 가진 순자산이 전체 세대의 46%에 달한다. 심지어 계속 증가할 예정이다. 즉, 전 세대 자산의 절반 가량을 노인 세대가 가지고 있다. 통계청에 의하면 노인 자산의 증가율 역시 다른 연령대와 비교해 높다. 2015년 이래 노인 자산 증가율은 현재까지 쭉 상승하는 추세다. 게다가 작년에는 60세 이상 취업자 수와 증가폭이 동시에 사상 최대를 기록했다. 각종 부동산 및 금융 자산이 있고, 계속 일까지 하며 소득을 유지하는 노년층들이 이전보다 눈에 띄게 증가하고 있다는 뜻이다. 이처럼 넉넉한 소비자들이 모이면 취향 따라 물건을 고르고 시장이 북적거리는 그림이 그럴듯해 보인다. 그런 시장 원리와 달리, 시니어 시장에 돈이 잘 풀리지 않는 현상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내 소비’ 없는 돈 많은 시니어

자산가 시니어들을 직접 만나 물었다. 영업장을 보유하며 소득을 계속 유지하고 있거나, 은퇴하고 개인 자산을 소유하고 있는 시니어들이다.

아직 시니어에게 취미나 여가는 어색한 말


 녹두거리 한식당 사장 김옥순 씨(68, 가명)는 "내가 쓰는 거? 내가 쓰는 거 한 개도 없어"라고 말했다. 일에 에너지를 쏟다보면 따로 소비할 시간도 딱히 나지 않아 별다른 취미나 여가에 큰 관심이 없다고 답했다. 김석호 씨(80)는 은퇴 후 토지와 부동산을 보유 중이다. "친구 만나서 밥먹고, 담배 안피우니까 그거로는 돈 안나가고. 봉사 나가고 있으니까 성당 나가서 헌금내고 하는거, 이런거 말고는 없는데? 집도 내 집이니까 돈 들 거 없지. 쇼핑은 식구가 알아서 해주니까. 아예 안가"라며 쇼핑 자체를 즐기지 않는 일상을 얘기했다. 박현식(호서대학교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절대 빈곤 때문에 소비를 못하는 게 아니다. 안 해봤으니까, 쓰지 못했으니까. 그게 습관이 돼서 있어도 못 쓰는 거다"라고 말했다. 열심히 살아가기 바빠 특별히 취미를 갖지 못했고, 일상은 일로 채워졌다는 세대의 특성 때문이라는 설명이다. 최성재(서울대학교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보통 사람들은 노후 준비라고 하면 경제적으로 준비가 잘 됐느냐 안 됐느냐, 경제적으로 안정적인 것만을 따진다"라며 사람에게 중요한 문화나 사회적인 관계의 노후 준비가 고려대상에 오르지 못하고 있다는 점을 말했다.

고령을 배려하지 않는 소비 환경


 마포구 부동산 사장 허종식 씨(86,가명)는 “예전같이 이렇게 찾아가기 쉽고 그러지 않아. 지하철 타고 내려갔다 올라갔다 바꿔타고 귀찮아”라고 말한다. 나이가 들며 점점 밖에서 소비하기는 어려워진다. 부동산 자산을 가진 김선영 씨(63, 가명) 역시 “지난번에 빵집을 갔는데 글씨가 작아서, 읽어달라고 했더니 종업원이 너무 귀찮아하더라고. 그 이후로 그 빵집은 안 가”라고 한다. 여행을 하려면 기차, 비행기 선착순 온라인 예매가 쉽지 않다. 최근 야구장 앞에서 이미 온라인으로 다 팔려 현장판매표가 없어 돌아간 시니어도 한둘이 아니다.

시니어에게 불편함은 소비하지 않는 결정적인 이유다. 빠른 디지털화, 작은 글씨, 한글 아닌 영어 메뉴 등의 배려없는 환경은 돈을 쓰고 싶은 시니어마저 지갑을 닫게 만든다. 박현식 교수는 “현재 시장은 시니어를 위하지 않는다”라며 시니어를 배제하는 환경을 말하며, 고독과 우울로 이어질 수도 있음을 지적했다.

절약이 미덕이라는 정신


 김선영 씨(63)는 "돈은 그냥 갖고 있는 편이 좋아, 남으면 자식들 주고…"라고 말했다. 안정성을 좋아하는 것은 노년층의 특징이기도 하다. 소비의 무게감이 다른 연령대와는 사뭇 다르다. 박현식 교수는 “특히 현 노년층은 태어나니 전쟁 직후, 그 이후 사회 혼란기, 돈을 모을 시기에는 경제위기가 닥쳤다. 저축이 생존 방식이던 세대다. 돈이 없더라도 안정적인 구조가 기대돼야 한다. 그러나 사회분위기상 그러지 못했고, 절약이 미덕이었다. 그러니 소비가 잘 안 된다”라고 말했다. 자신의 안정과 가족의 안락을 위해 저축에 치중해온 가치관이 깊게 뿌리내렸다. 반면 뭔가를 누리고 써봤던 현재 40, 50대는 다를 수 있다는 전망도 전했다.



시니어의 돈은 어디로 건강부터 손자부양까지

 여전히 ‘노인’ 하면 떠오르는 ‘식품’과 ‘건강’이라는 키워드가 건재하다. 한국보건산업진흥원 설문조사에 따르면, 고령자가 가장 필요로 하는 제품은 노인용 식품과 의약품, 서비스는 건강 관련 서비스와 요양서비스다. ‘식품’은 시니어에게 큰 비중을 차지한다. 최정민 씨(61, 가명)는 “집에서 먹는 게 습관 들여져서 편해, 입맛이 집밥에 딱 길들여져서”라고 말하며 가족이랑 먹는 식사를 훨씬 좋아한다고 전했다. 김택수 씨(82)는 “생활비가 많이 들어가지, 먹는거 많이 들어가고. 의류나 이런거는 1년에 몇번 안들어가고,먹는거는 매일 먹어야하니까”라 말했다. 시니어 가구는 자녀들과 따로 지내며 홀로 혹은 둘이 살아, 다인원 가구보다 식사에 더 품이 든다. 게다가 외식보다 집밥을 즐겨, 소비에서 식품이 상당한 부분을 차지한다.



건강은 건강보조제를 비롯한 ‘예방’, 의료비 등의 ‘치료’가 중심이다. 사업가 강현주 씨(61, 가명)는 “작년에 건강검진을 갔더니 영양제 과잉이라고 하더라. 멀티비타민제같은 건강보조제를 많이 챙긴다”라 말했다. 영양제를 비롯한 각종 건강 관련 상품과 서비스는 수요가 끊이지 않는다. 각종 비타민제, 칼슘, 홍삼 등이 주요 인기 품목이다. 특히 점점 건강해지는 시니어에게 ‘예방’의 부분이 더욱 커지고 있다. 의료비나 검진비, 요양비는 ‘치료’의 지출이다. 간병인 매칭 시스템 케어닥 이사 문영걸 BO는 “요양 수요는 많이 일어나는데 공급을 적시 적소에 하기 어렵다. 인력이 부족해 해외도 찾아야 하는 상황이다”라 말했다. 치료 서비스의 접근성도 높아지다 보니, 이전보다 빠르게 치료받는 시니어들이 많다는 것이다. 건강은 뗄레야 뗄 수 없는 시니어의 소비처다.

 또한, 수요조사로는 드러나지 않는 돈의 흐름이 있다. 자녀와 손자에게 전해지는 돈이다. ‘부양’에 쓰이는 돈은 시니어의 지갑에서 빠져 나가도 시니어 시장으로 들어가지 않는다. 김옥순 씨(68, 가명)는 "늙어가지고 돈 모으고 있어서 뭐 할 거야. 능력 되는 한은, 손주가 세 자녀야. 도와주지 않으면 안돼"라며 돈을 쓰지도 모으지도 않고 자식들에게 보낸다고 말했다. 자녀가 둘인데 손자들도 많아 아직 안정적이지 못하니 계속 도와야 한다는 이야기다. 실제로 한국은행 리포트에 따르면 자식세대인 30대의 자산 증가율은 전 연령대중 가장 낮다. 노년 세대가 전 세대 절반의 자산을 갖고 있어도, 그 자산으로 다른 세대를 돕느라 돈을 쓰지 못한다. 이전에는 자녀가 은퇴한 부모를 부양했다면, 지금은 돈 많은 부모가 자녀부터 손자까지 부양해야 한다.


업계가 기대하는 시니어 시장: 여행


글 심민섭 실습기자 mikeshim078@snu.ac.kr


 현재 시장의 상황을 반영하듯 시니어 스타트업 또한 건강과 요양뿐이다. 최근 더브이씨의 데이터베이스에 따르면, 노년층을 타겟으로 하는 스타트업 40개 중 3분의 2 이상이 건강, 요양, 식품 분야에 집중되어 있다. 그러나 이러한 추세 속에서도 시니어 여행 시장은 조용히 성장하고 있다. 일본에서는 퇴직 후의 삶을 새롭게 정의하려는 시니어들이 증가하고 있다. ‘새로운 어른문화연구소’의 조사에 따르면, 일본의 50-60세대는 퇴직 후 가장 하고 싶은 활동으로 여행을 꼽고 있다. 이러한 수요를 반영하듯, 일본의 시니어 전문 여행사 '클럽투어리즘'은 연매출 1조 6000억원을 달성하는 등 눈에 띄는 성장을 보여주고 있다. 한국에서도 이러한 추세를 따라, 건강과 식품이 주를 이루는 스타트업 시장 내에서 여행 분야의 확장이 관찰된다. 포페런츠와 같은 노인나들이 동행 서비스 제공 업체들은 시니어 여행 시장의 잠재력을 강조한다. 포페런츠 장준표 대표는 시니어 여행 시장이 건강, 식품 분야에 비해 두드러지게 증가하진 않았지만, 시장 자체는 확장되었다고 언급했다. 이는 한국에서도 시니어 대상 여행 서비스에 대한 수요가 점차 증가하고 있음을 시사한다. 업계 관계자들은 시니어 대상 여행이 상품성이 높아질 것으로 예상하며, 일본의 사례를 바탕으로 한국에서도 비슷한 성장이 기대된다고 말한다. 일본이 현재 고령화 사회로서 시니어 여행 시장에서 선도적인 역할을 하고 있으며, 한국도 이러한 추세를 따를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따라서 시니어 여행 시장의 활성화는 건강, 요양, 식품 분야와 함께 시니어 스타트업 시장의 또 다른 중요한 축으로 자리잡을 전망이라고 말한다. 이처럼 한국에서도 건강과 식품이 주를 이루고 있는 스타트업 시장에도 여행분야도 확장이 이루어지고 있다.

노인나들이 동행 서비스를 제공하는 포페런츠의 장준표 대표는 시니어 여행 시장이 건강, 식품 분야에 비해 증가폭이 크지 않아 드러나지 않았을 뿐 시장 자체의 규모는 커졌음을 언급했다. 한국에서 건강, 요양, 식품 분야가 성장세를 보이고 있지만, 여행 분야도 경험이 축적되고 활성화가 필요함을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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