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OCIETY NOW
“당연히 최저시급보다 많이 받죠”
일본에서 프리터로 살아가는 법
글ㆍ사진 실습기자 김규희(lunary0312@snu.ac.kr)
실습기자 사쿠라(sakusakukki3@snu.ac.kr)
실습기자 여지원(rosatt@snu.ac.kr)
실습기자 정은우(si1verain_@naver.com)
실습기자 타트야나(6solji9@snu.ac.kr)
실습기자 홍나영(skdud2811@snu.ac.kr)
일본에서 ‘프리터족’이 핫한 라이프스타일로 떠오른 지 40년이 지났다. 그 동안 일본 사회에서 프리터는 자유의 상징으로, 다른 한편으론 불안정한 고용을 나타내는 지표로 인식됐다. 그렇다면 2023년 지금 프리터로 살아 가는 이들의 삶은 어떨까. 도쿄에서 프리터로 살아가고 있는 오바타 준미 (27) 씨를 만났다.

▲ 도쿄의 한 건물외 외벽에 붙어있는 아르바이트생 구인 전단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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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리터는 ‘자 유(free)’와‘아르바이터(Arbeiter)’의 합성어로,1987년 취업정보업체 ‘리크루트’가 “원할 때 필요한 만큼 일하는 청년”을 지칭하는 용어로 쓰기 시작했다.1980년대 버블경제기 당시,일자리 수요가 줄어들고 호황이 계속되자 프리터의 생활 양식이 유행처럼 번지기 시작했다. 하지만 1991년 버블 붕괴 이후 프리터는 ‘불안정한 고용’을 상징하는 표현처럼 쓰이기 시작했다. 경기 불황이 오면서 취업시장이 얼어붙자 원하지 않았음에도 프리터족이 될 수 밖에 없는 상황이 되었기 때문이다.
가장 중요한 건, 지금 그리고 여기

▲ 카페에서 근무하는 오바타 씨
오바타 준미는 도쿄에 사는 27세의 자발적 프리터이다. 오바타 씨는 연세대학교 스포츠레저과를 졸업한 후, 2020년에 일본의 오디션 회사에서 일자리를 얻었다. 그러나 1년 후에 퇴사했다. 오디션 무대를 연출하는 직무를 기대했는데, 그녀에게 주어진 일은 협력 업체, 오디션 참여자에게 정해진 멘트로 전화를 돌리는 것뿐이었기 때문이다. 단순 업무를 2-3년 더 하면 하고 싶었던 일을 할 수 있었지만, 그녀는 미래를 위해 현재를 희생하고 싶지는 않았다.
“미래도 중요하지만, 현재를 어떻게 사느냐가 더 중요해요. 어느 날 갑자기 죽을 수도 있으니까요.” 그녀의 가치관은 저축방식에서도 드러난다. 그녀는 결혼 자금 등 먼 미래를 위해서 저축하기보다는, 여행 자금 등 단기적인 미래를 위해서만 저축한다.
작년 11월, 그녀는 약혼자와 같이 살아보니 잘 맞지 않는다는 것을 느끼고 파혼했다. 이 경험은 그녀에게 미래는 계획대로 되는 것이 아니라는 깨달음을 주었다. 이후 현재에 더 집중하고자 하는 그녀의 가치관은 더욱 더 강화되었다.
아르바이트를 통해 오바타씨는 “Here and Now”에 집중할 수 있다고 말한다. 그녀는 지금 개인 카페에서 바리스타로, 초콜릿 매장 쇼다이에서 판매원으로 일하고 있다. 일을 하지 않는 시간에는 카페에서 독서를 하거나 영화를 보거나 드라이브를 간다.
오바타 씨는 아르바이트의 장점으로 자유로움을 꼽았다. 혼잡한 장소를 싫어하는 그녀는 “사람이 없는 평일을 휴일로 정하면 한적하게 쉴 수 있어 좋다”고 말했다. 여행 일정에 맞추어 근무 일정을 조정하는 것도 가능하다. 소득의 대부분을 여행 경비로 사용하는 오바타씨에게 아르바이트는 현재를 즐길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이다.

▲ 오바타 씨의 일주일 일정표
세 달에 한 번씩은 시급 올라
직업이 불안정한 프리터에겐 늘 수입 문제가 따라붙는다. 다만 오바타 씨는 아르바이트만으로도 벌이가 충분하다고 한다. 수입의 1/3은 좋아하는 여행을 위해 아껴둘 정도다. 물론 지금 그녀는 부모님과 함께 살며 생활비만 벌어서 쓰는 상황이다. 그러나 당장 독립해 집값을 부담하는 것도 전혀 문제없다며 자신감을 내비쳤다. 물론 지금보다 일을 더 늘리고 허리띠를 졸라 매야겠지만, 아예 불가능한 수준은 아니라는 것이다.
2023년 기준 일본의 전국 평균 최저 시급은 961엔. 약 9,230원으로 한국과 비슷한 수준이다. 그럼에도 오바타씨는 수입에 대해 별로 걱정하지 않는 모습이었다. 그 이유를 묻자, 최저 시급에 딱 맞춰서 받는 경우는 거의 없었다고 답했다. 보통 고용주들이 최저 시급보다 더 얹어준다는 것이다. 더불어 오래 일할수록 시급은 더 높아진다. 그녀는 세 달에 한 번 면접 등 간단한 평가를 거치면 시급이 올라간다고 말했다. 예를 들어 처음 시급이 1,100엔일 경우, 세 달마다 최대 200엔까지 시급을 올려 받을 수 있다.


▲ 오바타 씨가 일하는 카페 외부(위)와 내부(아래)
알바생도 ‘을’ 아냐
프리터로서 사회의 시선도 신경 쓰지 않을 수 없다. 그러나 오바타 씨가 처음 프리터로 전향했을 때 주변에서는 오히려 “잘했다”며 환영하는 분위기였다고 한다. 그녀가 전 직장에서 힘들어하는 모습을 가까이서 지켜본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지인들은 안정적인 직장 대신, 원하는 일을 선택한 그녀의 결정을 격려했다.
그녀가 아르바이트 현장에서 받는 대우도 나쁘지 않다. 카페 아르바이트는 자유로운 근무 분위기를 자랑한다. 그녀는 손님이 없을 때면 편하게 휴대폰을 꺼내고, 카페에 자기 친구들이 찾아오면 함께 담소를 나눈다. 그녀는 “벌이가 더 풍족해져도 카페 일은 그만두고 싶지 않을 정도”라고 했다.
초콜릿 가게 일은 근무 시간도 그녀가 정할 수 있다. 아르바이트생이 원하는 시간에 따라 근무 시간표가 결정되기 때문이다. ‘시프트제’라 불리는 이 제도를 통해 그녀는 여행도 거리낌 없이 다닌다. 희망 근무 시간을 제출할 때 여행 일자만 비워두면 된다. 여러 아르바이트를 병행할 수 있는 것도 시프트제 덕분이다. 근무시간이 고정된 카페 아르바이트에 맞춰 다른 아르바이트 시간을 조정할 수 있기 때문이다.
아르바이트생 구하기가 하늘의 별 따기

▲ 카페 점장 카와하라 슌스케 씨
오바타씨가 근무하는 카페 점장인 카와하라 슌스케(29·사진)씨는 “인력난이 계속되는 일본에서는 장기간 근무할 수 있는 사람을 구하기가 힘들다"며 아르바이트생 구인의 어려움을 표했다. 이런 상황에서 시프트제는아르바이트생이 ‘그만두지 않도록’ 자유로운 근무 일정을 보장하는 역할을 하게 된다.
또한 그는 “고용주는 최대한 아르바이트생이 제출한 시프트를반영하려고노력한다. 그래야 피고용인이 꾸준히 일을 해주기 때문”이라며 시프트제로 가게를 운영하는 장점에 대해 이야기했다. 피고용인에 대한 배려가 곧 고용주에게도 득이 되는 셈이다. 시프트제는 아르바이터에게 자유로운 스케줄을, 고용주에게 안정된 일손을 제공해준다.
일본 아르바이트 제도 파헤치기
▲ 고용주와 피고용인의 라인 대화 캡쳐. (오바타 씨 제공)
일본 아르바이트 시장에는 ‘파견직’이 있다. 파견 센터에 소속된 아르바이트생이 다른 회사에 배정 받아 일을 하는 시스템이다. 프랜차이즈 카페나 편의점 아르바이트에서도 흔히 볼수 있으며, 농부, 배우 등 특정 시기에만 바쁜 사람들이 많이 찾는 근무 형태다. 일본의 파견 사원은 일반 아르바이터에 비해 시급이 높게 설정된 경우가 많다. 파견 자리가 나지 않으면 파견 업체에서 신청자에게 대기료를 지급하기도 한다. 고용인 입장에서는 기존 아르바이트생이 갑자기 ‘펑크’를 내더라도 바로 대체인력을 구할 수 있으며,센터에서 경력도 고려해서 매칭하기 때문에 능숙한 알바생을 구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파견직

시프트제
일본에서는 아르바이트생이 매주·2주 간격·매달 출근 스케줄표를 작성하고, 작성된 일정표를 바탕으로 고용주가 ‘시프트’를 확정한다. 이런 방식을 ‘시프트제’라고 부른다. 시프트제는 주로 라인 단체 채팅방에 차주·익월의 일정표를 공유하는 방식으로 이뤄진다. 대형 매장이나 프랜차이즈의 경우 어플로 신청과 확정이 이뤄지기도 한다. 시프트는 아르바이트생의 자유로운 일정 운용을 가능하게 한다. 여행이나 휴가 일정을 잡고 싶다면, 그에 맞춰 시프트 일정표를 제출하면 된다.
나는 한국의 프리터족,
주위 따가운 시선이 걸림돌

▲ 한국 프리터 이세진 씨
자신을 ‘자유로운 영혼’이라고 소개하는 이세진(22· 사진) 씨는 디자인전문대학교를 졸업한 후 안정적인 직장인 대신 프리터로 살기를 택했다. 진로에 대한 확신이 없다는 것이 이유였다. 하고 싶은 일이 없어도 일단 안정성을 위해 직장을 구하는 대세와는 다른 행보이다. 그녀는 지금은 하고 싶은 일이 딱히 없으니, 어차피 일에서 의미를 찾지 못할 것이라면, 안정성과 자유 중 자유를 택하는 것이 유익하다고 판단했다.
무언가에 얽매이는 것을 싫어하는 세진 씨에게 회사는, 똑같은 시간에 출근하고 똑같은 시간에 퇴근하게 하는 ‘족쇄’이다. 반면 아르바이트는, 여행 일정 혹은 콘서트 일정에 따라 시간을 자유롭게 운용할 수 있는 ‘열쇠’이다. 세진 씨는 버거킹 매니저직 제안도 거절했을 만큼 프리터로서의 삶에 크게 만족하고 있다.
그러나 그녀에게 신경 쓰이는 것이 있다면, 주위의 시선이다. 세진 씨는 불안정적이고 수입이 많지 않은 프리터의 특성상 주변의 시선이 따갑게 느껴지기도 한다고 말했다. 부모님을 비롯한 주변 사람들은 세진 씨에게 ‘빨리 취업해서 안정적으로 살라’고 말한다. 심지어는 아르바이트를 구하기 위한 면접 자리에서도 ‘취업 준비는 안 하냐’라는 질문을 받았다. 한국 사회에서 프리터로 살아가기란 녹록지 않은 것 같다며, 세진 씨 는 프리터에 대한 부정적인 시선이 없는 세상에서 영원히 프리터로 살고 싶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