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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NTERTAINMENT NOW

28년 차도 잘 몰라요, PD로 살아가는 법
<개그콘서트> 서수민 PD가 전하는 방송국 예능 PD 이야기

글·사진 실습기자 안혜인(hyein99n@snu.ac.kr)

           실습기자 양승하(seunghayang@snu.ac.kr)

‘싱글 남녀만 연애하라는 법 있어?’

 

서수민 PD의 머리를 스친 생각이다. <하트시그널>부터 <환승연애>까지 온갖 러브 버라이어티가 판을 치는 요즘 세상이지만, 그 안을 들여다보면 모두가 어리고 풋풋한 싱글들뿐이다. 

 

‘돌싱끼리 모아놓고 연애 버라이어티를 찍으면 어떨까?’

 

발상의 전환이었다. 그렇게 <돌싱글즈>라는 예능이 탄생했다. 모두가 다 하는 연애 버라이어티로는 시청자의 이목을 끌 수 없다는 판단이었다.

“예능 PD라면 트렌드를 좇아야 해요. 그보다 중요한 건, 트렌드를 따르면서도 새로움 한 꼬집을 추가하는 능력이죠.”

 

트렌디하고 핫한 콘텐츠라고 해서, 모두가 성공할 수는 없다. 콘텐츠가 성공하기 위해서는 화제성이 있어야 하고, 화제성을 갖추기 위해서는 대중이 느껴보지 못한 신선함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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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대학교에서 특강 중인 서수민PD

5월의 어느 저녁, 서수민 현 링가링 대표를 만났다. 방송국, 입사하기 힘들지만 막상 입사하면 더 힘들다는 악명높은 그곳. 그 안에서 예능 PD들은 어떻게 일하고 있을까? 살아남기 위한 방법부터, 콘텐츠 제작자로서의 팁까지. PD의 A to Z를 서 PD의 재미진 입담으로 들어봤다.

복면가왕, 사실은 수백 번도 더 까였다?

2015년 전국의 시청자를 홀렸던 MBC 예능, <복면가왕>. 사실 <복면가왕>은 세상에 나온 것만으로 다행인 프로그램이었다. 

 

“그 기획안은, 모든 방송사에서 다 까인 거였어요.” 서PD의 회고담.
 

하나의 프로그램이 세상에 나오기 위해서는 기획부터 제작까지의 과정이 필요하다. 이때 기획안이 승인을 받아야만 제작에 들어갈 수 있는데, 문제는 기획안이 통과되는 게 만만치 않다는 것이다.

 

“이 프로그램은 너무 어둡다.” 

“이건 너무 리스크가 크지 않니?” 

“이건 재미가 없다.” 

 

기획안이 까이는 이유는 너무나도 다양하다. 그러나 좌절하기에는 이르다. <복면가왕>도 몇 년을 견뎌 결국 엄청난 성공을 거두지 않았는가. 

 

여기서 PD로 살아남기 위한 첫 번째 미션이 주어진다. 바로 설득이다. 자신만의 콘텐츠를 기획했다면, 윗사람에게 그 재미를 설득해 내야만 한다.

“내가 맡았던 프로그램 중, 설득의 과정을 거치지 않은 프로그램은 단 하나도 없었어요.”  PD는 결국 자신의 결과물을 설득해 내는 사람이다. 

 

설득을 하려면, 근거가 있어야 한다. 예능 PD에게 설득의 근거는? 단연 프로그램의 재미, 화제성, 새로움, 독특함, 그리고 +a일 것이다. 이 중 가장 핵심적인 포인트를 잡아내고, 그 부분을 중점적으로 어필해야 한다.

가령 <돌싱글즈>의 경우 ‘이혼남녀의 사랑’이라는 포맷, <복면가왕>의 경우 ‘가수의 얼굴을 모른다’는 설정이 핵심 포인트였다. 자신이 기획한 재미 포인트를 의심하지 말고, 밀어붙이는 과정이 중요하다. 기획안이 거절당했다고 해서 좌절한다면, 잠재 가치가 충분한 프로그램을 잃고 마는 것이다. 

인간의 조건, 버라이어티의 불문율을 깨다

“개그맨들만 모아서 예능을 만들자.” 

 

2012년 나영석 PD가 처음으로 낸 아이디어였다. 사실 당시 개그맨들은, 버라이어티에 나가면 안 된다는 불문율이 있었다. 그때까지만 해도 ‘개그’ 하면 <개그콘서트>였고, 이는 다 대본이 있는 일종의 ‘쇼’였기 때문이다. 그런데 예능은 대본이 없다. 예능은 MC가 있어 프로그램의 진행을 맡고 나머지 멤버들 모두 나름대로 각자의 캐릭터에 따라 롤플레잉을 충실히 이행하는 큰 틀 안에서 진행되었다. 예능의 이런 흐름 속 나 PD의 제안은 황당할 수밖에 없는, 기존의 패턴을 깨는 아이디어였던 것이다. 여기에다 나 PD는 한술을 더 떴다. 일주일 동안 개그맨들을 한곳에 모아놓고 휴대폰, TV, 인터넷이 없는 공간에서 뭘 하는지 관찰카메라로 찍겠다는 것이었다. 

 

“처음 기획안을 받았을 때 ‘이게 뭐지?’ 싶었어요. 정말, 너무 아무것도 없잖아요.”

 

서 PD는 나 PD에게서 기획안을 받고 황당함과 의아함을 감출 수 없었다고 말했다. 내용도 내용이지만 예능 프로그램 치고 제목도 지나치게 진지해서 재미없어 보이고 시청자들도 안 볼 것 같다는 것이 그녀의 생각이었다. 그러나 나 PD는 이렇게 말했다. 

 

“난 이거 될 것 같은데.” 

 

충격이었지만 이유를 묻는 서 PD의 질문에 대한 그의 대답은 서 PD를 더욱 충격에 빠지게 만들었다. 

 

“나도 모르겠어. 근데 그래서 시청자도 볼 걸. 궁금하잖아.” 

 

나 PD의 말이 맞았다. 뻔하디 뻔하지만 보장된 재미 법칙이 있는 당시 예능 프로그램 대신 아무 계획도 없이 시작한 이 프로그램이 잘 됐다. 보장된 재미가 적힌 기획안은 없었지만, 또 그 아이디어를 제안한 PD조차도 뭐가 나올지 몰랐지만, 한편으론 ‘그래서 된다’ 였던 것. 많은 이들이 반대하고 의아해했지만 나 PD만의 설득의 근거는 바로 감이었다. 아무 계획이 없던 무모한 상황에서 본인의 감을 믿고 주변인들을 설득하고 밀어붙인 결과 편성을 따낼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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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중요한 건 감이다

“감 좋은 사람은 못 따라가요.”

 

나 PD와의 일화를 이야기하며 서 PD가 말했다. 여기서 질문이 떠오른다. 그렇다면 감은 어떻게 키워야 하는가? 감이 좋아지려면 연습을 통해 감을 키우는 것이 필요하다. 감에 대한 확신이 섰을 때 제작자의 설 자리가 만들어지기 때문이다. 가장 중요한 것은 훈련을 최대한 많이 하는 것이다. 어떤 콘텐츠가 잘 되는지 무수히 많은 경험과 검증을 해보며 감을 익혀가는 것. 이 콘텐츠가 되는지, 내 감이 맞는지 계속해서 테스트를 해보며 데이터를 쌓아가야 한다. 서 PD는 훈련을 통해 집중해서 키워야 할 세 가지 능력을 강조하였다.

 

첫 번째, 객관화 능력.

두 번째, 트렌드에 민감할 것.

세 번째, 자신감.

 

가장 중요한 것은 객관화 능력이다. 본인의 콘텐츠를 한 발짝 떨어져서 볼 수 있어야 한다. 끊임없이 객관화 연습을 하며 자기 검증을 통해 감을 기르는 것이다. 또한 제작자는 사람들이 어떤 것에 반응하는지 면밀히 살펴봐야 한다. 장르와 상관 없이 유행하거나 핫한 걸 찾아다니며 ‘왜’ 사람들이 이걸 보고, 좋아하는지 학습해야 시청자들을 이해할 수 있다. 시청자들의 시선이 어디로 향하는지 놓치지 않아야 한다. 트렌드를 읽고 시청자들을 알아야 이슈가 될 만한 이야기들을 뽑아낼 수 있다. 마지막으로 자신의 감에 자신감을 가져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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