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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CIETY NOW

‘대중 징벌’의 장이 된 학교폭력

글ㆍ사진 실습기자 김규희(lunary0312@snu.ac.kr)

             실습기자 임서영(ain031312@snu.ac.kr)

             실습기자 한예림(dpfla0520@snu.ac.kr)

쉽고 빠른 대중의 징벌로 문제 해결하려는 사회

‘강남패치’ ‘오메가패치’ 대상 바꿔가며 응징

4월 네이트판에 업로드된 한 학교폭력 가해자의 해명문에는 1000개 이상의 댓글이 달렸다. “평생 고통받으며 살라” “국민들이 네 얼굴을 모두 기억하고 있다”는 등의 비난 댓글이 대다수였다. 가해자를 ‘악마’ ‘사탄’ ‘쓰레기’로 지칭하기도 했다. 유튜브도 마찬가지다. 지난 2월 학교폭력 피해자가 직접 출연해 피해 사실을 밝힌 한 영상의 댓글창에서는 가해자의 이름 초성과 다녔던 학교 등의 신상 정보가 공유됐다. “네티즌들이 나서서 신상공개해야 한다”는 댓글은 400개 이상의 ‘추천’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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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가 운 좋게 대학을 가면 학교 홈페이지에 들어가서 네가 한 짓을 폭로할 거고, 네가 취업을 하면 회사 인트라넷까지 파고 들어가서 실체를 알릴 거야. 결혼도 쉽지 않을 거야. 네가 중학생 때부터 여자를 성적으로 학대했다는 걸 내가 네 예비 신부에게 알려줄 거니까. 아이를 낳으면 그 아이 SNS에 네가 만든 현우 엄마의 합성사진을 똑같이 올려서 네 죄를 대물림하게 만들 거야.”

지난 4월 공개된 드라마 <퀸메이커>에서 황도희(김희애 분)가 고등학생 학교폭력 가해자를 압박하는 장면이 유튜브에 업로드되었다. ‘참교육’이라는 제목이 달린 해당 클립은 조회수 10만 회를 기록했고, 댓글은 ‘사이다 같다’ ‘시원하다’는 반응이 대다수였다. 한 이용자는 “이제 법이 묻지 않는 죄들은 우리끼리 묻기로 했다”는 댓글로 1만5천 개의 ‘좋아요’를 받았다.

 

대중의 징벌대상이 된 것은 학교폭력이 처음은 아니다. 2016년, 인스타그램 계정 ‘강남패치’는 유흥업소 종사자의 신상 폭로를 두 달간 이어갔다. 임산부석에 앉은 남성을 ‘도촬’해 올리는 ‘오메가패치’, 특정 남성들이 성병에 걸렸다는 허위 정보를 퍼트린 ‘성병패치’도 있었다. 2020년 개설된 웹사이트 ‘디지털 교도소’는 성범죄자들의 신상, 나아가 해당 사건의 판결을 내린 판사의 신상을 공개했다. 2022년 재오픈된 ‘양육비 안 주는 사람들’ 홈페이지는 양육비를 지급하지 않은 부모들의 이름과 얼굴, 거주지와 같은 세부 정보를 적시했다. 신상 공개를 바탕으로 한 대중의 ‘사적 복수’는 집단을 옮겨 다니며 지속되고 있다. 대중의 징벌은 이미 우리 사회에 일견 ‘오락’처럼 만연하고 있다. 어쩌면 ‘대중 징벌놀이’는 이 시대 문화코드로 읽힐 수도 있을 정도다.

사적 복수 열풍... 인터넷 판관이 된 대중

보복 현실화에 “카타르시스” 칭찬

항간에선 요즘 부쩍 늘어난 사적 복수 콘텐츠의 인기가 사법절차에 대한 대중의 불신에서 기인한다는 얘기도 있다. 익명을 요구한 황 모 변호사는 “실제로 형사처벌이 부족하다고 느낄 경우 가해자 신상을 공개하여 대중의 사적 보복이 이루어지는 경우가 많다”며 “최근 정순신 아들 사건의 경우 학폭 가해자에 대한 실효적인 징계가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비난여론이 비등했던 게 그런 사례”라고 했다.

 

그는 현실에서 일어나는 사적 복수의 양상으로 직장에 항의 전화하기, 이메일 테러, 소셜미디어를 통한 공격 등을 꼽았다. 즉각적이고 파괴적인 보복이 현실화되면서 대중들은 카타르시스를 느낀다는 것이다.

 

일각에서는 대중이 사적 복수에 열광하는 이유로 ‘대리만족’을 꼽는다. 익명을 요구한 강 모 변호사는 “사회 속에서 취약함을 느낀 개인이 가해자에게 사회적인 비난과 응징을 대리 표출하며 쾌감을 느끼는 것 같다”며 “즉각적인 의기투합이 이루어지는 인터넷 공간에선 비난에 동참함으로써 동질화를 경험하며 큰 자극을 받는다”고 말했다.

온라인 공간은 “기울어진 운동장”

가해자로 지목되면 발언권 · 방어권 없어

전문가들은 “가해자로 지목된 이들에게 발언 기회가 주어지지 않는 상황이 가장 위험하다”고 입을 모았다. 학교폭력 폭로 글이 올라오면 피해 주장 당사자와 지목된 상대는 ‘가해자’와 ‘피해자’의 관계로 못박힌다. ‘피해자’ 측이 절대적인 발언권을 갖게 되어 실체적 사실 규명과 멀어지게 된다는 것이 강 변호사의 설명이다.

 

황 변호사는 “누구도 부당하거나 위법한 수사를 받아서는 안 되는 것은 마찬가지”라며, “가해자도 대응할 기회를 가질 수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법조계에서는 사적 복수 열풍이 법 시스템을 외면하는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강 변호사는 대중이 직접 가해자를 징벌하는 사건들을 ‘과거의 인민 재판’에 비유했다. 적법한 절차를 우회하여 벌어지는 즉결적인 심판에 가깝다는 것이다. 그는 “이런 현상이 지속된다면 학교폭력 문제뿐 아니라 다른 영역에서도 사회적으로 합의된 시스템을 거부하고 ‘더 쉬운 방법’으로 목적을 달성하려는 경향이 생길 수 있다. 법보다 주먹이 가깝다고 해서 주먹에 의지한다면 모두 피해자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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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입 생기부에 ‘기스’, 경쟁자 제거”

엄벌주의 부작용 우려 목소리도

인터넷 여론은 관련 문제에 대한 정책에도 영향을 미친다. 학교폭력 가해자에 대한 처벌 강화 여론이 거세지며 가해자의 대입 불이익을 확대하는 방안이 주목받고 있다. 지난 4월 정부에서는 제 19차 학교폭력대책위원회를 열어 ‘학교폭력 근절 종합대책’을 의결·발표했다. 해당 대책에는 ▶2026년부터 정시 전형에도 가해 이력 필수 반영 ▶자퇴생의 가해 이력 대입에 반영 ▶가해자의 학생부 조치기록 보존기간 2년→4년 확대 등의 내용이 담겼다.

 

그러나 부작용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나왔다. 지난 3월 국회입법조사처는 조사보고서를 통해 “대입이 학생의 인생에서 구직과 경제소득 등 매우 큰 영향을 미치는 사회 구조에서 학교폭력 조치사항을 대입에 전면 반영할 경우 발생하는 부작용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며 “학교와 교사의 중재로 교육적으로 해결하기보다 가해학생과 피해학생 간에 학교폭력 관련 소송이 현재보다 증가할 우려가 있다.”고 밝혔다.

 

황 변호사는 처벌을 악용하는 사례가 더 많아질 수 있다는 점을 우려했다. 그는 “고2 말이나 고3 1학기에 잠재적 경쟁자들을 극단적인 혐의로 신고하는 사례도 있다. 운동부에서 주전 자리 확보를 위해 감독을 형사고소하거나, 사이가 좋지 않은 운동부 선배를 신고하는 사례는 이미 많이 쌓여 ‘노하우’로 전수되는 경향도 보인다”고 말했다. 변호사들이 개입하여 실제 치료의 필요성과는 무관하게 피해자에게 정신과 상담을 받게 한 후 진단서를 발급받게 하는 방식도 있다고 했다. 그는 특히 학교폭력 사건만을 전담으로 하고 있는 변호사들이 점점 늘어나고 있는 현실을 지적하며, “이러다 ‘저 친구가 전학을 가게 만들면 성공보수 얼마’하는 날이 올지도 모른다”고 덧붙였다.

피해자 구제 · 학교 환경 정상화가 먼저

전문가들은 가장 큰 문제로 가해자 처벌에만 관심이 집중되어 피해자 구제 방법에 대한 논의가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점을 꼽았다. 강 변호사는 “가해자 엄벌 여론은 비등한데 학교폭력 피해자들에 대한 적절한 치료와 일상 복귀에 대한 대책은 오히려 뒷전이라는 점이 걱정”이라고 했다.

 

전문가들의 처방은 원론적이지만 입시중심의 학교교육, 교권 추락과 같은 학교 환경을 교권이 존중되고 인성교육이 이루어지는 학교로 정상화하는 것만이 진정한 해결책이라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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