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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책은 어른을 위한 책이다” 그림책에 빠진 어르신들

  • 양재표
  • 2023년 12월 12일
  • 3분 분량

최종 수정일: 2023년 12월 17일

부평 갈산도서관 시니어 북스타트 워크숍을 다녀오다


글/사진/영상 양재표 실습기자(yangjp@snu.ac.kr)



어르신들이 집중해서 읽고 있는 것은 그림책이었다.

     

“왜 자꾸 내일이래? 인생은 오늘이야!” 그림책 <인생은 지금>의 한 구절이다. 10월의 마지막 날, 인천 부평의 갈산도서관에서는 60대 여성들이 10여 명 모여 그림책을 함께 읽으며 웃음꽃을 피우고 있었다.

     

어르신들이 그림책을 함께 읽고 토론하거나 역할극과 그림 그리기를 하는 모임을 가진지도 벌써 여덟 번째다. 그리고 이번이 마지막 시간이다. 오늘 함께 읽은 그림책은 <인생은 지금>과 <일어나>. 모두 쓸데없는 걱정을 털고 일어나 자신을 돌보라는 내용의 그림책이다.

     

그림책을 읽고 어르신들은 자연스럽게 ‘나를 돌보는 법’에 대해 이야기하는 시간을 가진다. 저는 일주일에 한 번 정도 카페에서 차 한 잔 마시며 책을 읽는 시간을 가져요.” “아침에 일어나면 미지근한 물을 마셔요.” “일본 구마노고도 순례길을 다녀왔어요.” “가족이 나만 바라보고 있어서 힘들어요. 그냥 혼자 있는 게 제일 좋아요.” 자신만의 방식으로 ‘나를 돌보는 법’을 공유한다. 서로의 이야기에 고개를 끄덕이고, 때때로 웃음과 박수가 터져 나온다.

     

이번 수업의 하이라이트는 ‘그림책과 나’를 주제로 한 소회의 시간이다. 여덟 차례의 만남을 거듭한 끝에 이르러, 참석한 시니어들은 그림책과 함께한 여정을 ‘나의 이야기’로 재탄생시키는 시간을 가졌다. 규칙은 간단했다: 그림책에 대한 자기 생각을 말하되, 반드시 “내게 그림책은 OOO이다”의 형태로 발표하는 것이다.

     

한 참석자는 “그림책은 아이들만의 것이 아니라 어른이 더 잘 이해할 수 있는 숨은 보물이며, 숙제와 같은 존재”라고 표현한다. 더불어 그는 “그림책을 통해 쫓기며 살아온 날들을 뒤로하고, 느리고 편안하게 나로 돌아가는 시간을 만들었다”고 덧붙인다. 또 다른 참석자는 웃으며 말한다. “내게 그림책은 제2의 인생을 꿈꾸게 하는 축복의 줄이다.” 그는 “그림책을 만나며 사탕처럼 줄줄이 좋은 일들과 좋은 사람들이 엮였다. 앞으로의 삶이 더욱 기대된다”고 한다.

     

이날 수업을 담당한 백영숙 북스타트 운영위원은 “나이를 먹을수록 편견이 세진다. 함께 그림책을 읽고 토론하는 활동을 통해 이러한 편견을 버릴 수 있다”고 한다. 실제로 2023년 발표된 사우스캐롤라이나 대학 연구팀의 연구에 따르면, 독서 모임에 정기적으로 참여한 노인들이 인지 능력에서 통계적으로 유의미한 개선을 보였다고 한다. 이 연구는 ‘함께하는 독서’를 통한 사회적 교류와 인지 자극이 건강한 노년에 기여한다는 것을 시사한다.


“시니어가 도서관을 가는 게 당연한 문화를 위해”

이경근 책읽는사회문화재단 이사 인터뷰

시니어 북스타트 운동을 이끄는 사람이 있다. 이경근 책읽는사회문화재단 이사. 그는 어린이들이 그림책에 더 쉽게 접근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기 위해 북스타트 운동을 진행해 왔고, 이제는 시니어들에게로 그 사업을 확장하려고 한다. 지난 10월, 그를 직접 만났다.

     

─시니어 북스타트 사업을 간단하게 소개해달라.

북스타트 운동은 영국에서 갓난아기들에게 그림책 꾸러미를 선물했던 것으로 시작했다. 그리고 이 사업을 초등학교, 중학교 등 연령별로 확대하기 시작했고, 시니어 북스타트는 그 대상을 시니어로 확대한 것이다. 시니어를 위한 그림책 리스트를 만들어, 그중에서 두 권을 골라 시니어에게 그림책 꾸러미를 선물하는 사업이다. 시니어 북스타트의 슬로건은 ‘북스타트 리스타트’, 즉 책으로 인생을 다시 한번 시작한다는 뜻이다.

  

─시니어 북스타트 사업을 기획하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

우리나라에 복지관이 잘 되어있고 활동이 재미는 있지만, 정신문화·민주시민·평생교육이라는 측면에서 부족함이 있다. 평균 수명이 짧았을 때는 이런 점들을 별로 신경을 안 썼지만, 이제는 시니어가 스스로를 챙겨야 하는 시대고 계속 평등하게 살아야 한다. 그리고 이를 위해서는 책과 도서관이 필요하다고 생각해 이 사업을 기획하게 되었다.

  

─왜 그림책인가?

우리는 보편적인 운동을 지향한다. 우리 사회는 ‘책’이라고 하면 엘리트의 전유물이라고 생각한다. 한글을 전혀 모르는, 초등학교도 다녀본 적 없는 80살 노인분이 책을 읽는다는 것은 상상하기 어렵다. 이런 고정관념은 불평등을 심화하고, 민주주의를 심각하게 위협한다. 또 나이가 들면 들수록 긴 책을 읽는 게 쉽지 않다. 나도 50대인데, 책 읽는 속도나 집중력이 현저하게 다르다. 그래서 최대한 많은 시니어가 편안하고 즐겁게 책을 읽을 수 있는 문화를 만들기 위해 그림책 꾸러미를 선물하기로 했다.

  

─시니어를 위한 그림책 리스트는 어떻게 선정하나. 

요즘 그림책이 정말 잘 나온다. 옛날 이야기를 다룬 책도 있고, 시니어의 일상을 다룬 책도 있다. 핵심은 시니어들을 이 사회에서 주변인으로 취급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아파서 우리가 돌봐줘야 하는 존재가 아닌, 당당한 존재인 것이다. 그래서 책들도 씩씩하게 살아가는 시니어의 이야기가 많다. 하지만 꼭 주인공이 할머니 할아버지일 필요는 없다. 시니어들이 읽으면 좋은 느낌일 것 같은 책을 고른다고 보면 된다.

  

─그림책 꾸러미를 선물하는 것이 시니어 북스타트 사업의 전부인가?

그림책 꾸러미만으로도 충분하지만, 그림책 인문학 워크숍도 진행한다. 그림책을 읽은 시니어들이 만나서 그리기와 글쓰기, 낭독극, 인형극, 독서 토론 등의 활동을 한다. 현재는 시범 사업 단계라 국고의 지원을 받아 22개의 도서관에서 진행했다. 8차시에 나누어 수업을 했고 강사도 직접 초빙했다.

     

─시니어 북스타트 사업을 하면서 이루고 싶은 목표가 있다면?

시니어가 도서관을 가는 게 당연한 문화, 시니어를 위한 책이 세상에 널려 있는 게 당연한 문화, 시니어가 책 선물을 받는 게 당연한 문화를 만들고 싶다.



어른을 위한 그림책 모아보기


인생은 지금, 다비드 칼리 글, 세실리아 페리 그림, 오후의소묘

         

일어나, 김지연 글·그림, 북멘토

     

일곱 할머니와 놀이터, 구돌 글·그림, 비룡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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