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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한국 정치는 최악?
강민석, “발전하는 중인 걸요”

전 청와대 대변인 강민석은 정치 낙관론자다. 그는 문민정부 시절부터 29년간 정치부 기자였고, 2020년 청와대 대변인으로 발탁됐으 며, 지금은 서울시교육청 대변인이다. 그는 왜 낙관론을 내세우게 됐을까? 서울대의 한 강의실에서 강 대변인의 말을 들어봤다.
◄ 강의하는 강민석 대변인
정치가 나라를 발전시켰다고?
#1. 1995년 10월 19일, 박계동 민주당 의원은 국회에서 128억 원의 잔고가 찍힌 예금 잔고 조회 전표를 세상에 공개했다. 그는 이 전표가 노태우 전 대통령의 비자금이라고 주장했고, 이 소식은 단숨에 모든 신문의 1면을 장식했다. 이 장면을 필두로 ‘노태우 비자금 공화국’의 전말이 속속 밝혀졌다. 검찰 조사 결과 노태우 전 대통령은 자그마치 4,600억 원의 비자금을 조성한 것으로 드러났다. 기업으로부터 이권을 약속하고 받은 뒷돈이었다. 이런 거대한 규모의 비자금이 밝혀진 것은 금융실명제 덕분이었다. 1993년 김영삼 대통령이 실명으로만 금융 거래를 할 수 있도록 법제화한 덕에 불법적 자금의 출처를 추적할 수 있었던 것이다. 이 스캔들은 뇌물 정치의 시대가 저물어감을 알리는 신호탄이었으며, 보다 투명한 정치를 이끌어내는 계기가 됐다.

▲ 빌 게이츠와 만난 김대중 전 대통령
#2. IMF 외환 위기 직후 임기를 시작한 김대중(DJ) 정부 시절이었다. DJ는 당시 손정의 소프트뱅크 회장과 빌 게이츠 마이크로소프트 회장을 만났다. 그리고 물었다. “대한민국을 다시 살릴 방도가 없겠습니까?” 두 사람은 첫째도, 둘째도, 셋째도 브로드밴드라고 답했다. DJ는 흔쾌히 동의한 후, 두 사람에게 물었다. “그런데 브로드밴드가 무엇입니까?” 당시만 해도 DJ는 브로드밴드가 무엇인지 몰랐던 것이다. 그렇지만 DJ 정부는 임기 내내 초고속 인터넷 망을 설치해나갔다. 덕분에 DJ가 취임한 당시 약 1만 명이었던 초고속 인터넷 사용자는 그가 퇴임할 때쯤 약 1,000만명 이상으로 불어났다. 국가적 위기에 맞선 지도자의 결단을 계기로 대한민국은 IT 강국으로 발돋움할 수 있었다.
갈등 심각한 지금, 정치 진보 증거는?
그래도 지금은 공정을 요구하고 있다. 부정부패가 만연하던 '비자금 공화국' 시절에는 어떤 언론도 공정을 이야기하지 않았지만, 오늘날 공정은 시대 정신이 됐다. 노태우 비자금이 밝혀지던 때가 보여주듯 한국 정치는 정반합적으로 발전해 왔다. 어느 시대에나 모순은 존재한다. 정치의 모순이 극대화될 때, 이에 저항하는 움직임에 의해 부정의가 해결된다. 이러한 과정 덕에 대통령이 거액의 비자금을 조성하던 시절의 '낙제점 정치'에서, 그래도 2류쯤은 되는 오늘날의 정치로 나아갈 수 있었다. 모순적 갈등의 발생과 그 해결이 서로 꼬리를 무는 정반합의 과정이 정치 발전의 역사를 관통하는 것이다.
정치 발전 방향은 어디를 향해야 하나
1987년은 민주화에 대한 열망이 이뤄진 해다. 6월 항쟁 이후, 대통령 직선제와 5년 단임제로의 개헌이 이뤄지며 당시의 시민들은 정의가 승리했다고 외쳤다. 그러나 이 ‘87년 체제’도 시간이 지나니 낡은 제도로 전락해버렸다. 지금의 헌법이 오늘날의 문제 상황 해결에 유효하지 않다는 이야기다. 오늘날은 더 이상 민주화가 중요한 쟁점이 아니다. 오히려 지역・세대・성별 등의 심각한 갈등이 쟁점이 됐다. 이 해결책으로 개헌과 선거구제 개편이 논의되지만 해낼 수 있을지는 모르겠다. 개헌을 위한 3분의 2 의석수를 확보하기 어렵고, 소선거구제로 당선된 국회의원들이 중·대선거구제를 추진하는 것은 더욱 요원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개혁이 필요한 시점은 맞다. 오히려 이 모순이 더욱 심화된다면 그 반작용으로 국민 주도의 개헌이라는 과정이 생기지 않을까.
그렇다면 가장 이상적인 정치는?
‘까치밥 정치’다. 까치밥은 감나무의 감을 다 수확하지 않고 하나씩 남겨 까치들이 먹도록 하는 시골의 풍습으로, 인간과 동물의 공존을 상징한다. 마찬가지로 여당과 야당은 함께 존재할 수밖에 없다. 공존의 가치 실현이라는 까치밥의 메시지를 실천하는 정치 문화가 형성돼야 한국 정치가 더욱 발전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