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 멈춘 종로3가 노인국을 여행하다
- 이예준, 하주영
- 2023년 12월 12일
- 4분 분량
최종 수정일: 2023년 12월 13일
글 이예준 실습기자 · 글/사진/영상 하주영 실습기자
지하철 1·3·5호선 종로3가역 3번 출구에서 보이는 돈화문로11길은 노인국으로 향하는 통로다. 이 도로를 기준으로 북쪽은 젊은이들의 핫플인 익선동, 남쪽은 노인들의 핫플인 종로3가 거리로 나뉜다. 마치 서로의 구역에 가면 안 된다는 결계라도 있는 듯, 종로3가역에서 같이 내린 사람들은 나이대에 따라 행선지가 달라진다. 남쪽으로 오는 젊은이들도, 북쪽으로 오는 노인들도 거의 찾아볼 수 없다.
Upcoming 실습 기자 두 명은 그 경계를 넘어 노인국을 여행해보기로 했다. 평소에 향하던 익선동을 뒤로하고, 종로3가 거리로 발길을 옮겼다. 돈화문로11길, 그 짧은 거리를 걷는 동안 우리를 둘러싸고 있던 젊은 사람들이 전부 노인들로 바뀌었다. 불과 2분 만에 우리는 완전히 다른 세계, 다른 시대에 온 느낌이었다.

종로3가 거리를 직접 여행해보세요!
다른 시간, 다른 감각의 종로3가
노인국에서의 첫 행선지는 기원. 이곳에서 걸음을 옮길 때마다 보이는 곳은 카페도, 사진 스튜디오도 아닌 기원이다. 당차게 엘리베이터에 탑승했던 우리는, 문이 열리고 보이는 풍경에 한참을 내리지 못하고 망설였다. 젊은 사람들은 한 명도 보이지 않았고, 청년 여가 공간과 달리 너무나도 고요했다. 사장님 역시 젊은이 둘이 들어온 것이 신기하다는 듯 쳐다봤다. “젊은 사람들은 거의 안 오고, 대부분이 70대 이상이죠. 종로 이곳이 바둑이 시작된 곳이에요. 그래서 기원도 많고, 기원 때문에 종로에 많이 오시기도 하고.”
평일 오전 10시, 젊은이들에겐 학교와 직장 생활로 바쁠 시간. 하지만 그들에게는 이 시간이 가장 기원을 찾기 좋은 시간이었다. 흑돌과 백돌을 두며 똑딱거리는 소리가 시계 초침 움직이는 소리처럼 시간과 함께 흘러갔다.
두 번째 행선지는 쌍화차 전문 카페 ‘더쌍화 COFFEE’. 들어서자마자 우리를 반겨준 건 여느 카페에서 나는 원두 냄새와는 다른 한약재의 향이었다.
“여자분들은 주로 대추차, 생강차 많이 찾으시고. 그래도 원조는 쌍화차지. 그거 먹어봐.”
조금은 다른 손님인 우리에게 직원 세 분이 모두 말을 걸어왔다. 한 번도 먹어보지 않은 메뉴를 시킨다는 생각에 두려웠지만, 여행에 가면 현지 음식을 먹어야 한다고 하지 않던가.
‘더쌍화 coffee’의 내부 풍경 (왼쪽) / 쌍화차를 주문하면 나오는 메뉴 (오른쪽)
매일 마시는 커피 한 잔 값으로 쌍화차 하나 시켰을 뿐인데 나오는 메뉴는 차, 닭죽, 인삼, 떡, 조청, 오렌지, 말린 대추였다.
“이걸 안 먹었어? 이게 얼마나 몸에 좋은 건데.”
가니쉬인 줄 알고 먹지 않은 인삼 탓에 카페를 나설 때는 직원분께 한 소리도 들었다. 이곳은 물가의 차이도, 시차도 있는, 우리를 둘러싼 소리, 향, 맛, 풍경도 다 다른 노인국이었다.

‘20세기 모습 그대로’··· 옛 모습 간직한 거리
각 행선지로 이동하는 거리 자체에서도 낯섦이 느껴졌다. 거리를 지나며 볼 수 있는 상점가와 간판은 40년 전으로 시간 여행을 하는 것 같은 느낌을 줬다. 종로3가 거리에는 영어 간판보다도 한자 간판이 더 많다. 영어 간판에 익숙해져 있는 우리에게 원색으로 꽉 찬 한글 간판은 오히려 이색적으로 다가왔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정작 한국의 전통을 강조하는 익선동 거리에서는 영어 간판을 더 많이 볼 수 있었다. 거리의 풍경을 결정짓는 기준은 거리의 주 이용 세대인 것이다.

낯선 거리를 지나 도착한 셋째 행선지는 낙원 악기 상가. 종로3가역 5번 출구에서 나오자마자 보이는 낙원상가는 우리나라 악기 상점의 메카인 동시에, 종로3가 거리를 과거로 돌려놓는 주요한 역할을 한다. 백색의 건물 위에 얹어진 칠은 그 세월을 가늠케 했다. 세운 상가, 청계천 상가와 같은 과거의 거대 상가가 대부분 사라지거나 재건축 대상이 되고, 최근 건축 스타일이 과거와 달라지면서 이 건물에서 느낄 수 있는 이질감은 배가 되었다.
낙원상가 세월의 흔적 속 그 색채를 더하는 것이 있는데, 이는 과거를 풍미한 유명 원로 영화배우들이 그려진 실버영화관 포스터다. 낙원상가 4층에는 고전 영화를 저렴하게 관람할 수 있는 노인을 위한 영화관, ‘실버영화관’이 자리하고 있다.
갈 곳 없는 노인들의 아지트가 된 종로3가
“사람이 행복을 느끼는 곳이 어디일 것 같아요?”
40년째 자리를 지키고 있는 그곳에서 만난, 실버영화관의 상영관 낭만 극장의 대표 김종준 씨가 질문을 던졌다.
“사람이 행복을 느낄 수 있는 곳이 가정, 직장, 아지트인데, 80대가 되면 가정에서 행복을 느끼는 게 사실상 힘들잖아요? 아내하고 둘 남는데 둘 중 하나는 보통 아프고, 자식들은 다 분가해서 나가고. 직장이야 다 퇴직한 뒤니까 행복을 느낄 수가 없고. 그러면 아지트밖에 안 남는데, 실버영화관을 아지트로 생각하시는 분들이 많죠.” 노인들이 젊었을 적 관람했던 영화가 상영되는 이곳, 그때의 인테리어와 감성을 그대로 간직한 이곳. 그들이 행복을 느낄 수 있는 아지트로서의 기능을 하고자 이곳을 운영하고 있다고 김종준 씨는 말했다.

“이렇게 온 김에 직접 한번 상영관 들어가 볼래요? 이곳에서는 들어가고 나오는 게 자유로워요. 그것이 민폐가 되거나 하지는 않죠.” 우리는 직접 상영관에 들어가 봤다. 한 관에서는 1954년작 이탈리아 영화 <침략자>가, 한 관에서는 원로가수의 콘서트가 진행되고 있었다. 상영관을 가득 채운 노인들은 조용하게 영화를 감상하기도, 가수에게 크게 호응하며 공연을 관람하기도 했다.
어르신들은 청년기를 보냈던 20세기의 풍경을 그대로 간직한 종로3가 거리를 그들의 아지트로 생각하고 있었다. “젊었을 때 이곳에 많이 와서 놀았지. 그때는 여기가 서울의 중심이었다고. 이곳에 와서 옛 생각도 하고... 달라진 게 없거든. 그대로야.” 역 근방에서 친구를 만나 커피를 마시던 정 모 씨의 말씀이다. 김 모 씨(81)는 “노인네들이 요즘 젊은 사람들 많이 가는 데 들어가면 싫어한다. 그래도 이 근처에서는 눈치를 안 봐도 돼서 좋다”라며 종로3가 거리를 자주 찾는다고 말했고, 탑골공원에서 만난 이 모 씨(77)도 “젊은 사람들이 가는 데는 잘 모르고 다른 노인들이 많은 데가 마음 편하다”라며 “노인들은 노인들이 많은 곳을 갈 수밖에 없다”라고 말했다.
그들이 기억하는 서울의 풍경은 강남도, 여의도도 아닌 바로 이곳이었다. 여전히 그들에겐 종로가 서울의 중심이고, 대한민국의 중심이다. 우리에게 이곳이 다른 세계이듯, 그들에겐 젊은 사람들이 북적이는 곳이 다른 세계였고, 우리가 이곳에서 이방인이듯, 그들은 그곳에서 이방인이 된 것처럼 느끼고 있었다.
이용객 세대 6070 → 7080 ··· 시대와 함께 나이 드는 종로3가
“여기 처음 운영할 때는 60대가 많았어요. 대부분이 그랬는데, 이제는 그 사람들이 그대로 나이를 먹어서 70·80대가 주류죠. 오던 사람들이 그대로 오는 겁니다.”
낭만 극장 대표 김종준 씨는 극장을 찾는 사람들이 몇 년째 그대로라고 했다. 이용객들의 연령대가 올라갔다는 것이다. 종로3가가 20세기의 모습을 그대로 간직한 것처럼, 이곳을 간직하고자 하는 사람들도 그대로였다. 그들은 종로에서 함께 늙어가고 있었다.

동시에 종로3가 거리 역시 나이 들고 있다. 시설은 점차 낡아가고 노후화되어 간다. 쓰레기는 아무렇게나 버려지고, 한글 간판은 관리되지 않은 채 빛바래 있었다. 공원이나 길거리에서 사람만큼이나 많이 볼 수 있는 비둘기는 종로 3가의 현실을 담아내고 있는 듯했다.

“이 나이에 불만? 그런 거 없어요. 그냥 이곳에 앉아서 시간 보내고... 사람들 구경하고 하는 거지.” 관리가 제대로 되지 않는 종로3가 거리의 모습에 불편을 느낀 우리는 어르신들께 이 거리에 불편한 점이 없는지 여쭈었다. 그러나, 대부분의 어르신들은 큰 불만 없이 과거와 달라지지 않은 이곳이 좋다며, 이 모습이 변하지 않기를 원했다. 함께 나이 들어가는 종로를 즐기고 있는 모습이었다. 우리 눈에는 문제가 많아 보였던 이 공간이 그들에게는 마냥 소중한, 변치 않기를 바라는 곳이었던 것이다. 우리가 살던 세계와는 다른 법칙이 적용되고 있었다.
이 여행의 마지막 행선지는 종로3가 부동산이었다. 이곳에서 부동산을 운영하고 있는 변화민 씨는 “이쪽 건물은 대부분 50년은 넘었다”라며 이 거리의 건물 대부분이 상당히 오래된 상황“이라고 말했다. 또, “대부분의 상점도 옛날 그대로인 경우가 많다”라고 덧붙였다. “종로3가는 지하철이 많이 다녀서 땅이 흔들리면 안 되기 때문에 재건축이나 신축 건물이 들어올 수가 없어요. 그래서 건물들이 옛 건물인 상태고, 상점도 다른 지역에 비해 오래 유지되는 편이에요. 지금 어르신들께 저렴하게 식사를 제공하고 있는 가게들은 다 오래 하시면서 계속 계약을 연장하는 상태라고 보시면 될 거예요.”
거리의 상점도 그대로, 거리의 풍경도 그대로, 그곳을 찾는 사람들도 그대로. 시간이 과거에 멈춘 듯한 이곳에서 모두가 함께 나이 들어가고 있었다. 과거의 대한민국을 간직한 곳, 아이러니하게도 그래서 우리 눈엔 더 낯선 곳. 노인국 ‘종로3가 거리’에서 우리는 걸리버가 된 기분을 뒤로하고 다시 21세기의 대한민국으로 돌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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